진중권의 정치적 입지에 대해서는 딱히 평하고 싶지 않다. 그가 훌륭한 '쌈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의 정치적 사상은 아직 검증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시대를 바라보는 눈은 탁월한 데가 있다고 본다. '미학자'라는 말 그 자체와 유학 간 티를 팍팍 내는 단어 선택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 특히 한국 사이버세계에 대한 진중권의 해석은 사회 전반에 걸친 관계 없을 것 같았던 현상/사건들을 묶어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호모 코레아니쿠스 이 책은, 적당히 길 가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진중권 특유의 '까는' 어조 없이 차분히 한국인을 '관찰'하는 눈으로 보고 있으며, '미학 오디세이'처럼 철학문구들을 남발하지도 않고, 꽤 재미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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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집착으로 구성된 440장의 가족사진 / A family photo of 440 pieces composed of tenacity / C-prints, mixed media / 120x130x60 cm /1998~1999


위의 권오상의 작품에 대하여 진중권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점점 더 복제 이미지로 변해간다. 한때 견고했던 세계는 증발하고, 그것의 표면을 핥는 사진들만 남아 속이 텅 빈 현실을 구성하게 된다. 증발하는 것은 세계만이 아니다. 한때 피와 살을 가진 인간 역시 증발하여 사진으로 기워 만든 텅 빈 피상적 표면의 입방체로 남는다. -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그런데, 그런데 말야, 이거 정말 그대로, 게임을 하면 맨날 보는 폴리곤 아닌가! 진중권의 저 평은 수만의 사람들이 나날이 누비는 사이버세계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 아닌가. 굳이 3D 게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TV를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사진을 통해서 온기가 없이 평면에 투영됨으로 인해 '왜곡'되어 기괴한, 그래픽 툴로 떡칠 보정된 거짓인지 진실인지도 모르는 (더군다나 그 진실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피상적인 이미지만을 접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늘 들었던 말이 바로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소리. 학교에서도 '누가 뭐라 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삶의 목표마저 남의 눈에 맞춰지고, 사람들은 남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하든 올바로 사는 것, 혹은 누가 뭐라 하든 내 멋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이른바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혹은 '여봐란 듯이' 사는 것이 된다. 이런 문화에서 윤리를 형성하는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이다. (...) 이렇게 윤리가 타인의 눈에 맞춰져 형성된 사회에서는 죄도 드러나지 않는 한 떳떳하고, 죄가 아닌 것도 드러나는 한 부끄러운 것이 된다. -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이 부분은, 조금 많이 꼭꼭 씹어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인터넷 문화와 더불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논객'들. 논객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검객'을 연상시킨다. 구술문화에서는 어떤 이가 주장하는 논리보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솜씨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사회의 논쟁은 대개 '논리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검객의 결투'로 치러진다. 사안의 해결보다 중요한 것이 승부를 통해 결정되는 명예의 감정. 여기서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논쟁이 합리적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Virtual Reality가 아니라 Real Virtuality
한국은 네트워크는 발달했지만, 콘텐츠는 빈약하다. 사방으로 깔린 망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1인칭-3인칭의 '정보'가 아니라 1인칭-2인칭의 '교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금방 느끼겠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라도 콘텐츠가 매우 깊고 풍부하다. 반면 한국 유저들의 것은 빈약하고 깊이도 없다. 하지만 맥루언이 이야기한 것처럼 '미디어는 메시지.' 때로는 망을 통해서 전달되는 콘텐츠보다 망 그 자체 속에 구현된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문구, "망을 통해서 전달되는 콘텐츠보다 망 그 자체 속에 구현된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역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Google의 PageRank 알고리즘 역시 이러한 맥락 아닌가?
2009/05/04 23:21 2009/05/04 23:21
Date
2009/05/0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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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 해체주의는 모더니즘의 그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해답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장학재단에서 들은 말, 겸이를 만나서 이야기 한 것, 그리고 아직까지 읽고 있는 진중권의 책들은 큰 충격이다. 난 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럼 그 해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2007/07/26 07:49 2007/07/26 07:49
Date
2007/07/2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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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삶에서 철학이 필요하단 걸 느끼고 있다. 집에 있는 철학책을 조금 뒤져봤는데, 쇼펜하우어책만 달랑 있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이 사람 책은 정말 정말로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밖에 없다니 (절규). 읽으면서 느낀 건데, 그 독단적인 말투를 빼면 여러모로 맘에 드는 말이 많긴 하지만 (ex. 생은 고통과 나태를 왕복하는 추일 뿐이다), 역시나 이 책은 집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나중에 서점에 가면 니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구해서 보고 싶다.

그... 미학오디세이 3권을 봤다. 나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그림이 1) 아름다움의 추구와 2) 인간 내면의 무의식 표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현대 미술을 그러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마치 책을 껍데기 디자인이 이뻐서 맘에 든다고 하는 수준 정도밖에 안 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만일 그렇다면 음악은 왜 아직도 중세 시대의 역할 - 감정 표현과 상황 전달 - 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고.

사랑니를 뽑았다. 얼굴이 우스꽝스레 부풀어 올랐다. 사람 만나기가 싫다.
2007/07/14 09:54 2007/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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