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조승희가 일반적인 인간과 현격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라도 단절되어 있는 세상에서 몇 년을 보낸다면 잔혹한 생각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썼던 연극 대본을 보았을 때도, 영문과 대학원생이 쓸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꽤나 짖궂은 고등학생이라면 저런 내용을 상상해 보았을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게임이나,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이 정도의 잔인한 내용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Kill Bill이나 Saw를 보면서 '웃는' 자가 한둘인가.

버지니아텍에서는 조승희가 낯을 많이 가렸지만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없었고, 누구도 이러한 처참한 결말을 상상할 수 없었으며, 그러므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비하여 CNN, NBC와 같은 언론매체들은 조승희가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기 전에 그의 징후들을 포착하여 미리 예방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총기 소유에 대한 논쟁을 슬며시 빼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찌되었던, 조승희가 한인이냐 아니냐는 지금의 주된 이슈가 아니다. 설령 미국인들이 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려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면에 띄워서 떠들 만큼 미국인들이 멍청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국인 혹은 소수인종에 대한 반감이 증가되는 것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인들이 피해를 받았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흘러다니긴 하지만, 아직 기사에서 그러한 소문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것을 은폐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 소문 뿐만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버지니아텍 측, 총기 소유 지지자, 혹은 경찰 측에서 자신의 책임과 자신에게의 분노를 소수인종과 한국인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은 적지 않다고 본다. 물론 대학 생활을 영위하는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전가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글쎄, 우리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렌덤한 어떤 인종, 예를 들어 미국 내의 핀란드인이 이러한 일을 저질렀을 때 우리가 보일 만큼의 태도만이 충분하다. 그리고 상태가 지금보다 악화되면, 그 때 되서 몸을 사려야 할 지, 싸워야 할 지 판단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2007/04/20 09:02 2007/04/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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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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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민간인 32명의 죽음'은 도처에 있다
[주장] "버지니아 비극, 스스로를 돌아보라"
2007-04-19 오후 12:56:00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 ...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이 또 다시 많은 이들을 울렸다. 평범한 삶을 살던 32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은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맞아 사망했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척, 그리고 친구였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은 가슴 속에 얼마나 깊은 공허감과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갈게 될까?

그러나 슬픔에 잠겨 있는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을 다른 국가, 다른 공동체의 비극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32명의 무고한 희생은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다른 공동체들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검색 사이트 '구글'에서 'Iraq'와 '32 killed', '32 died', 'killing 32' 단어를 조합해 검색해본 기사 제목 및 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2004년 3월 3일
이라크 국경 방어 미국이 뒷받침, 32명 살해

2004년 4월 24일
이라크 내 폭력 사태로 최소 32명 사망, 60명 부상

2004년 6월 1일
구타로 인한 구금자 사망 3번째, 12개월 간 32명 사망

2004년 7월 16일
이라크 내 공격으로 32명 사망

2004년 9월 17일
미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바그다드에서 32명 사망

2004년 10월 15일
이라크 폭력 사태로 최소 32명 사망

2004년 12월 28일
티크리트 내 공격으로 32명 사망

2005년 6월 23일
합동 작전으로 32명 사망

2005년 11월 14일
미군 이라크 공격- 미 해군, 32명 무장세력 사살 발표

2005년 12월 9일
이라크 버스 자살 폭탄 테러에 32명 사망

2006년 1월 6일
이라크 최악의 날- 시아파 장례식 참가자 32명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

2006년 3월 2일
이라크 정당, 자파리 총리 물러나길 원해- 32명 사망 등 이라크 내 폭력 시위 늘어

2006년 3월 24일
이라크 전역에서 32명 사망

2006년 5월 14일
폭력 사태로 32명 사망

2006년 6월 27일
7개 수니파 단체, 이라크 내 휴전 제안- 32명 폭력 사태로 사망

2006년 7월 28일
바그다드 폭력 사태로 32명 사망

2006년 12월 8일
이라크 가정 2곳 공격당해 최소 32명 사망

2007년 1월 10일
바그다드 인근에서 기상 이변으로 비행기 추락, 32명 사망

2007년 1월 30일
이라크 국가기념일에 폭력 사태로 32명 사망

2007년 3월 15일
바그다드 도심 내 고급 공무원 겨냥한 자살 폭탄 테러, 32명 사망

2007년 4월 10일
시민 겨냥한 미군 공격, 32명 폭탄으로 숨져.

2007년 4월 15일
이라크 도시에서 상당수 사상, 최소 32명 사망

이같은 비극들은 각각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척, 친구였던 3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 역시 가슴 속에 얼마나 깊은 공허감과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갈게 될지 우리는 짐작할 수 없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비극을 재생산하는 미국

'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은 사회로부터 고립됐다고 느낀 정신이 이상한 어떤 한 사람이 저지른 일회성 사고였다. 그러나 '이라크의 비극'은 미 의회와 언론, 그리고 상당수의 미국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미국 정부가 저지르고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이라크 내 기반시설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이라크 정부를 없애고 경찰 및 군대를 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이 같은 만행 뒤 이라크 안보에 관해서는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의 병력을 투입했다. 그리고 이라크의 비극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아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한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으로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정부가 결코 이보다 덜하지 않은 슬픔과 절망감을 얼마나 많은 타국민에게 안겨주고 있으며, 그 만행을 얼마나 더 많이 반복할 작정인지.

미국의 만행에 희생된 이들의 슬픔 역시 어느날 갑자기 수업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 버지니아 공대의 희생자들의 가족 및 친구들이 느끼는 슬픔과 똑같다.

버지니아 공대의 비극은 우리에게 인류애를 상기시키며 타인의 슬픔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을 스스로의 군국주의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모르는 이에게 갑작스런 죽음과 슬픔을 안겨주는 미국 정부의 악행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이 글은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에 18일 게제된 것이다. (번역=강이현 기자 / ☞원문 바로가기)
http://www.commondreams.org/archive/2007/04/18/593/
2007/04/20 09:01 2007/04/20 09:01
Date
2007/04/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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