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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3 강간, 아줌마, 그리고 군대
1.
우리 사회의 반성폭력 담론이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계 가족 보호라는 남성 공동체의 이해에 더 기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9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남성 3명이 길거리에서 승용차로 납치하여 집단 강간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여성이라고 볼 수 없고, 생식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제 1심과 제2심 판결에 이어 무죄를 판결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의 정의뿐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의 시각에 부합하는 '진짜' 여성은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중략) 현행 성폭력 특별법에서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라 '임신 가능한 부녀자 보호'라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남성 간 성폭력, 성 전환자에 대한 강간, 여성 성기에 이물질 삽입 등은 강간이 아니라 추행죄가 적용되어 강간보다 형량이 낮다. (중략) 가부장제 사회가 '임신 가능한 부녀자'만을 '여성'으로 볼 때, 성폭력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니라 남성 각자가 소유한 '임신 가능한 부녀'에 대한 침해죄 - '사유재산권' 침해 - 가 된다.

2.
그렇다면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바친 인생만큼 우리 사회는 어머니를 기억하고 존중하는가. 우리 기억 속의 아릿한 상처와 안쓰러움으로 남아 있는 헌신과 희생을 다한 어머니와, 음식점에서 떼를 지어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지하철에서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뻔뻔스러운 여성들, 오형근의 사진 작품에 나오는 촌스럽게 화장한 얼굴, 문신한 눈썹, 뚱뚱하고 나이 든 추레한 여성,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물건 값을 깎아대며 시장에서 악다구니를 써대는 여성들은 우리들 각자의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인가? (중략) '탈특권화된' 아줌마와 '특권화된' 어머니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성역할에 충실하며 집에만 머무를 때,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을 때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가 욕망을 드러내며 집 밖으로 나올 때, 남의 어머니일 때 그녀는 아줌마다. 그녀가 집에서 내게 밥을 해줄 때는 어머니지만, 그녀 자신이 음식점에서 남이 해준 밥을 먹을 때는 아줌마다. 여성은 평생토록 서비스를 하는 주체이지 받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서비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성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3.
남성들이 일상적인 군 복무든 전쟁터에서든, 군대 안의 노동과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여성에게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후방에 있는' 여성의 후원과 인정, 감사의 치사가 없다면, 이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남성 지배 세력은 피지배 세력 남성을 동원할 수 없고 전쟁도, 군대도 제도로 기능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베트남 참전 한국인 병사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는, "알 포인트 작전에 지원하면 쭉 빠진 스튜어디스들이 주스를 따라주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이번 훈련만 끝나면...... 정숙아, 기다려라.", "서울 가면 바니걸스하고 뽀뽀하게 해줄게.", "귀국하면 딸내미와 창경원에 갈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처럼 상상이든 실제든, 여성을 매개하지 않는 군사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남성은 국가와 직접 연결되거나 국가 그 자체이지만, 여성은 남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국가에 닿을 수 있다. 때문에 '남자가 없는 여자들' - 레즈비언, 비혼 여성, 이혼 여성 등 - 혹은 남성에게 선택받기 어려운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을 갖기 어렵다. 여성은 병역의 의무가 있는 남성에게 밥을 해 주거나 섹스 상대가 됨으로써, 즉, 성역할 노동을 통해 국민인 남성의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남성 국가의 인정에 의해 '국민'이 된다. (중략) 한국 사회에서 젊은 남성이 군대에 가면, 또래 여성은 애인으로서 성역할을 강하게 요구받는데, 이는 개인 차원의 연애를 넘어 탈영과 같은 일탈을 방지하는 일종의 간접적인 국방 행위로 인식된다. 이른바 '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격렬한 비난은 이 같은 인식과 관련이 있다. 애인을 군대에 보낸 여성과 연애하는 남성은, 남성 연대를 깬 남성으로 간주되고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군기지 주변의 성매매나 '군 위안부' 제도가 남성들의 군대 내 긴장과 폭력을 '완화'하는 것처럼, '사회에 있는 애인'이 하는 역할도 이와 비슷하다.

-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교양인
Reference
신체적으론 여자지만 법적으론 남자다
성폭력을 통해 본 여성의 시민권
2008/04/13 23:56 2008/04/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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