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논리적인, 실은 논리적으로 보이는, 논쟁들은 그 근거들의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기 이전에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 혈액형-성격 연관론을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려 했던 이유는 그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유연히 사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열등감과 질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위의 종교 논쟁을 보고 잠깐이라도 진화론이 합당하다는 근거와 창조론이 합당하지 않다는 근거를 대려고 고민하였던 이유는 내가 기독교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못마땅함은, 그들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성향에 기인한다고 내 스스로에게 합리화 시키고 있었지만, 실은 심적 안정과 행복을 (그들은 얻었는데) 나는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열등감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론이 옳은지 창조론이 옳은지 학문적으로 개뿔도 흥미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화론은 감정적인 논쟁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자주 인용되곤 한다. 멜서스의 인구론과 수많은 그 변형들은 실은 굶어죽는 빈민층들을 감싸기 귀찮아하는 상류층의 논리적 도구일 뿐이다. 뇌용량-지능 연관 학설은 여성과 흑인들이 열등하다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진화의 가장 우수한 마지막 단계라고 오해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아메바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결론 짓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일 뿐이다.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은연중에 (자연소멸 법칙에 따라) 동성애가 '열등'한 형질이라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도 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작자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당신은 대머리가 사막에서 사망할 확률이 대머리가 아닌 사람들의 사막에서의 사망률보다 10% 높다고 해서 대머리 형질을 가진 사람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진화론이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콘돔 사용법이나, 카드깡 사기 방지하는 법, 신용카드 관리하는 법들보다 결코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잘못 틀어박힌 진화론은 (당사자가 자신이 수많은 억지 주장에 쥐여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삶을 속박할 수 있기 때문에 교과 과정에서 이것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한다 (화학 시간에 굳이 폭탄 제조법을 알려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만일 생물학자들이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만인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교양이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진화론이 얼마나 위험한 속박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는지를 학생들에게 거듭 각인시켜 준 후에야 그것을 가르치기를 희망한다. 사실, 조금 더 억지를 써서, 이러한 교육이 진화론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학 이론 전반에 대하여 실시되기를 바란다. 나는 상대성 이론을 들먹이며 문화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들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든.
마지막으로, 이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던 작품 / 장소들을 언급하고 싶다 : * 후회하지않아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생명의 춤 * 문화를 넘어서 (에드워드 홀의 책들을 알려주신 황용하 선배께 감사를 드린다) * 인간에 대한 오해 * 작은 인간 * 천년바위
- Date
- 2007/06/21 09:18
- Category
- contemplation
- Tag
- 도서, 문화를 넘어서, 생명의 춤, 에드워드 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인간에 대한 오해, 작은 인간, 진화론, 후회하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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