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까먹고 있었는데 그간 많이 연재했군. 진중권이 시니컬하게 세상 까대는 만년 생원이라면 이 사람은 세상 반쯤 초탈한 산적 두목이렸다.
모든 아이에게 아버지는 신화니까. 권위와 규율과 질서의 원형이니까. 어떤 아이에게든 아버지의 세속성과 속물성은 수용하기 벅찬 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부성신화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깨뜨리는 과정 없이, 아이가 어른이 되는 법은, 결코, 없다. 그러니 스물일곱에 여전히 그 신화에 포섭돼 있다는 건 일종의 성장지체. 당신의 도덕적 강퍅함 역시 그 부성신화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소녀적 강박의 결과.
-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79594.html
자신의 몰염치와 이기심을 오히려 가족의 권리인 줄 안다. 인간관계에 이만한 착각도 없다. 이 도착적 가족윤리, 자본주의 출현, 사생활의 탄생과 더불어 발명된 ‘신성한 가족’이란, 근대의 가족신화로부터 도출된 거다. <중략> 존재를 질식하게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60725.html
그 능력을 자기객관화라 한다. 어른과 아이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능력이야. 지성이 바로 여기서 출발하거든. 이게 안 되면 어른, 아냐. 이건 주름살처럼 절로 안 생겨요. 이두박근처럼 획득해야 하는 거라고. 어떻게. 내 평면으로부터 벗어나. 등짝 붙일 공간만 있어도 집, 나와. 졸업 전까지 최대한 자주 이 나라 떠. 어떻게든 내 평면 밖으로 나가. 그렇게 나와 다른 걸 조우한 분량이 충분히 축적되면, 어느 순간 그게 돼. <중략> 삶의 통증 대부분은 지만 힘든 줄 알아서 지가 만드는 거야. 억울해서. 더구나 지가 너무 중요한 줄 알아요. 그래서 북받쳐. 하지만 이, 시큰둥, 되잖아. 그럼 자기 인생 가지고 소설 안 써. 자기가 누군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 담백해진다고. 당연히 관점도 클리어해지지. 자, 여기까지가 자기 객관화 패키지.
-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70984.html
그래서, 이 땅에서 효도는, 채무다. 허나, 삶 자체의 변제, 애당초, 불가능한 거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효도, 죄의식이 되고 만다. 명절은 그 죄의식 탕감받으러 가는 날. 길이 막혀 다행이다. 갇힌 시간만큼 속죄의 진정성은 입증되니. 반면 그 죄의식이 버거운 자들, 그 대리 지불, 자식된 권리로 합리화해 버린다. 유학도 결혼도 자식된, 합당한 권리. 그거 풀서비스 못하는 부모는 자격 미달자. 이들에게 부모는, 유산이다. 우리 사회, 이 과도 사육과 성장 지체를, 효와 사랑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 없어도 유학 보내고 결혼 시키는 아버지 있습니다”란 보험 광고, 그 뒤틀린 멘탈리티 위에 탄생했다. 부모는 디져도 돈은 남겨야 한단다. 지랄. 부모 자격 갖고 어따 대고 협박인가. 죽는 것도 서러운데. 더구나 이 병든 패러다임에선, 자식은, 자식인 게 유세가 된다. 미친 거지.
-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45509.html
내 꺼 하나도 안 남을지도 모른단 불안. 좋은 거 다 뺏길지 모른단 조바심. 내 유전자 멸절될지 모른단 생물학적 위기의식. 이거 생태계 모든 수컷의 숙명적 공포라고. 우두머리가 암컷들 독점 후 지들끼리 찌그러진 수컷 원숭이 무리의 궁상, 본 적 있으신가. 인간인 내가 다 슬퍼요. 인간 수컷들, 자신들 욕망이 최소공배수로 보장되는 교배 제도, 발명 않을 수 없었다고. 일부일처, 사랑의 숭고함이 탄생시킨 고귀한 합의, 아니란 거지. 사회적 리비도의 안정 위해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타협이었단 거지. 그러다 보니 무한 방사 본능 타고난 수컷 유전자 통제를 위해 강력한 사회 억압도 병행 발명됐던 게고. 그리하여 윤리 종교, 모두 이 수컷의 욕망 통제와 기회균등 위해 복무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긴장의 밸런스, 부자들은, 아주, 간단히, 무너뜨리거든. 재벌들 여성 스타 사귀면 어떤가. 씨바지 뭐. 딱히 내 것이 될 확률 제로여도 어쨌든 저 색히가 좋은 거 다 차지하잖아. 근데 한 여성지가 그 불평등을 가이드까지 해버리네. 무력한 일반 수컷들, 꼬추 화나겠어, 안 나겠어. 테스토스테론이 사주하는 이 맹렬한 분노에 하이클래스 브랜드는 하나도 모르겠고 평가절하된 과시용조차 내 손목엔 없단 비애까지 더해 수컷들 비통의 포효가 천지를 진동할 수밖에. <중략> 사랑에 대한 신화화, 사회적 기능, 분명 있어요. 낭만적이잖아. 스스로 속물성에 학을 뗀, 외로운 우리 모두, 기댈 덴 있어야지. 근데 그 신화화된 가치 신봉하는 당신의 사랑 강령, 사실은 공포에 대처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 유용하긴 해도, 절대가치는 아니란 거. 거기 의지해 상대에게 정당하다며 요구하는 포기, 그거야말로 이기적이란 거. 희생? 사랑의 희생 말하는 자들, 결국 본전 찾아요. 희생한단 의식엔 이미 계산이 전제된 거야. 자기기만적 사기지.
-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34153.html
- Date
- 2008/04/05 15:58
- Category
- scrapbook
- Tag
- 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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