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자는 물이 시원하고 흐르며 투명하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은 단단하고 미끌거린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은 굉장히 뜨거운 기체이기에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이 뿌옇고 끈적끈적하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이 조그마한 덩어리이며, 그것을 확대해서 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모양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은 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을 양성자와 전자들의 덩어리라고 말한다. 혹자는 물은 무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말한다. 혹자는 물은 둥그런 모양을 하고 뭉쳐 있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은 옳다.

신도 그와 같다.


2.
물은 존재한다. 공기는 존재한다. 물리 법칙은 존재한다. 그리고 신은 존재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존재한다. 이 글을 쓰는 이성재는 존재한다. 그리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구름 밟고 서 있는 수염 허연 노친네가 아니며, 그것은 '존재'라는 동음이의어를 통해 맺어진 참담한 오역으로 인한 망상일 뿐이다. 아니, '신은 존재한다', 라는 말 자체부터가 틀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일부이다.


3.
창세기의 '우리의 모양대로 창조하셨다'를 문자 그대로 착실히 직역한 오역자들 덕에 세상은 그 머저리들이 그렇게나 원하는 말세로 치닫고 있으며, 인간은 자연과의 분리로 인한 단절과 상실감에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진화가 그러하듯 신은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억겁의 주사위 놀이를 통한 우연의 결과로 인한 필연만이 신이라 불릴 뿐이다.


4.
장님이 셋이 있다. 한 사람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한 사람은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한 사람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졌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코끼리가 옳다고 논쟁을 벌였다. 그 때 진리를 아는 자가 홀연히 내려와 코끼리는 하나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장님들은 그 말을 듣고 상대방의 코끼리가 거짓이라면서 서로를 배척하였다.

우리는 우주 전체에 펼쳐진, 아니, 우주 전체인, 아니,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니, 존재하는 신의 현현을, 아니, 신을, 아니, 우리가 볼 수 있는 신의 옷자락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것이 신과의 접견이다. 고흐는 흙 투성이의 구두에서 그것을 보았고, 뉴턴은 수식에서 그것을 보았으며,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그것을 보았고, 허블은 망원경을 통하여 그것을 보았다. 혹자는 대마를 피우며 그것을 보았을 것이며, 혹자는 기도를 통해 그것을 보았을 것이며, 혹자는 성교를 통하여 그것을 볼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신의 파편이라도 완벽히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수많은 신의 표현 - 종교, 과학, 철학, 예술 등 - 을 통하여 신을 불완전하게나마 표현하며, 인간은 그러한 수많은 신의 조각에서 부터 진정한 신의 형상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5.
세상과 철저히 고립된 감옥에서 그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옆방에 갇혀 있는 재규어였다. 그는 재규어의 가죽 무늬가 가진 점들의 배열과 형태를 파악하는 데에 여러 해를 보낸 끝에, 어느 날 거기서 그 문장을 읽어내고 신성과의 신비한 합일을 체험한다. 그 때 그는 물로 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불로 된 거대한 바퀴를 본다. 그 안에는 우주의 심오한 구성 방식과 세상의 모든 기원들이 들어 있었다. (중략) 신의 마지막 사제는 40음절, 14개의 단어로 된 그 문장을 끝내 발음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신과 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고, 물과 불로 된 윤회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 미학 오디세이 3, 진중권

2007/08/20 19:41 2007/08/20 19:41
Date
2007/08/2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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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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