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있었다. 평범한.
아이는, 죽음이란 것을 알지 못한다.
아이에게는 모든 것은 영원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곤 하지.

어느 날, 트럭이 아이의 강아지를 뭉게버렸어.
기괴하게 비틀어져 움직이지 않는 차갑고 딱딱한 몸을 부둥켜 안고,
아이는 그 날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어.

아이는 죽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려움도.
종종 아이는 죽음에 관한 꿈을 꾸고 소스라치며 일어나곤 했어.
아이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랬다.
그러면,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 수 있겠지.



아이는 자라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
소년은 어른의 지혜로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소년은 더 이상 자라나고 싶지 않았다.
그 혈기 왕성한 육체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소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받은 시간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며 소년은 몸이 부스러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것. 더더욱 슬픈 것은,
그 사실을 이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 소년은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삶이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소년은 즐겁게 해 줄 수 없다는 것.



소년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만 할 뿐이었다.
축복받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어느 날, 소년은 한 소녀를 만났다.
소녀 역시, 소년처럼 세상을 잿빛 눈동자로 응시하고 있었지.
소년과 소녀는 안온한 죽음과 공허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 기뻐했어.
그들은 서로 기대며 영원의 안식이 내리기를 기도하곤 했지.



어느 날, 자동차가 소년을 받아버렸지.
그 순간, 소년의 머릿속에는 소녀밖에 없었어.

온통 딱딱한 전자음과 차가운 백색으로 뒤덮인 병실 안에서,
소년은 다시 죽음이 두려워졌어.
소녀의 곁을 떠나기 싫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죽기 싫어.

어두운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몽롱함 속에서,
소년은 필사적으로 소녀의 이름을 불렀지.
그리고, 소년은 소녀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음을 느꼈어.
손에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방울도.
소년은 눈을 떴어.
그리고 눈물 방울로 얼룩진 소녀의 볼에 달콤한 키스를 했지.



소년은 하루하루를 소녀와 함께 보내기 시작했어.
그리고 어떻게 소녀의 앙증맞은 입술에 웃음을 지워 줄 수 있을지,
어떻게 소녀의 귀여운 볼을 빠알갛게 물들여 놓을지,
어떻게 소녀에게 자신이 소녀를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는지 알게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어.

어느 날, 소년은 무언가가,
자신의 나른한 삶에 다시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그리하여 소년은 어른이 되었지.
소녀에게 단 하나 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평범한 소년이
그 놀라운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더라는 거지.
2005/01/22 01:00 2005/01/22 01:00
Date
2005/01/22 01:00
Category
phantasmag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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