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갑자기 찾아온다.
아직 십여년은 남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하며
생을 자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갑자기.
우리 집 재산과 아버지의 월급과 가계 지출이 보이며,
싸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것을 즐기게 되고,
이 집에서 나의 위치와 책임이 어떤지 알게 되는 때가.
그리고 남 몰래 머릿 속의 조그마한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열 가지 숫자와 +, -, *, /, = 만 있는 아주 간단한 계산기를.
토토토톡, 토톡. 짧지만,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그 대답을 기다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소년은 변하게 된다.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구체적인 곳을 바라보게 된다.
빗소리와 무지개 대신 신문과 TV에 더욱 눈길을 돌리게 된다.
세상을 향해 던지던 맑은 미소는 불안한 과묵으로 변한다.
하늘을 통채 담던 눈망울은 탁한 잿빛으로 변하게 되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이 소년도 어른이 되었다고.
그리고 자축하던, 이제는 더 이상 자축하지 않는, 소년을 향해 축복을 던진다.
...부조리하다고?
아니다. 그것은,
단지 슬픈 장례식.
- Date
- 2005/09/01 11:45
- Category
- everyday
- Tag
- 카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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