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교조 선생님이 쓴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차라리 일진이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고, 하물며 사회에서 조직폭력배가 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감마저 없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글도 생각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분명 악마까지도 사랑할 것이다."

사회의 악이라 불리는 조폭이 된다 하더라도 안심이 된다, 라. 분명 펄쩍 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 상대방을 자신에 맞추어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희망에 따라 상대방이 변화하면 진정 기뻐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이고, 지고지순한 신의 사랑 아닐까. 그렇다. 사랑은 참견이라기 보다는 겉보기엔 방관에 가까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전쟁이나 영아살해와 같은 풍습조차도 이해하려는 눈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자들의 시점을 나는 가장 사랑에 근접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속 좁은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사랑만 할 수 있을 만큼 하는 것. 나 자신을 어떠한 이상에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나에 대한 사랑인 것 같다.)

분명, 이런 생각을 가지면 인생은 편해진다.

하지만, 너무 보수적이다. 어떠한 변화도 기대하지 않는다. 다른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행복한 현실에 안주한다. 방관자의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쾌락주의다. 행복하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제시와 함께).



이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싶다.

ps. 그러한 이유로 나는 지금의 금욕적이고 전도를 강조하는 기독교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 어렴풋히 기억나지만, 국사 시간에 배웠던 대승불교 / 소승불교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 초기의 보수적 / 쾌락주의적 성향이 스스로의 쇄락을 부추겨 이상주의적 / 금욕적인 종교가 이렇게 발전한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감히 내어보고 싶다.

2006/03/26 22:39 2006/03/26 22:39
Date
2006/03/2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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