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최근 지인들의 자기소개서를 조금 봐 주게 되었는데, 뭐랄까, 경쟁 의식이 뼛속까지 스며들어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영어 경시대회 수상"을 설명할 때, "비록 외국에서 살다오지 못 하였지만 그러한 친구들을 제치고 영어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남들 못지 않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쓴다던지. 저 문장이 참으로 익숙하다는 사실과, 저 문장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은 한동안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왜 '비록', '제치고', '못지 않은' 같은 단어들이 저 문장에서 이성적으로 올바른 연결을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왜 시험/경시 대회에 '1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가? 왜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철학이 자연스럽게, 어려움 없이 이해되는가?)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아이들에게 종교 교육을 하는 것은 범죄라고 주장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사실 이러한 경쟁 위주의 교육이 범죄라면 더 큰 범죄 아닐까 싶다. 사방이 막힌 대한민국에서, 외국을 접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기회가 아니고, 그나마 접하는 외국도 한국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느라 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걸 생각할 때,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경쟁적 사고방식을 교육 받은 아이들은 평생 그 자학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교육 체제에 잘 적응하면 할 수록. 그리고 재생산/재확산 되겠지. 마치 전염병이 퍼지는 것처럼.
2008/09/20 11:59 2008/09/20 11:59
Date
2008/09/20 11:59
Category
contemplation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Trackback URL : http://bluebrown.net/tattertools/BlueBrown/trackback/174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17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