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본 하늘은 저런 하늘이 아니었는데.
소년은 해가 저물어들며 발간 기운이 스며든 회색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 건물 사이 그나마 남은 조각 하늘도 전깃줄에 찢겨져 있다.
해는, 이미 저 탑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도시 한 가운데에 솟아난 회색 시계탑을 바라본다.
구월 이십오일 열여덟시 사십분 이십....이십삼초.
기괴하게 도시를 내려다보는 시계탑에는 바늘이 다섯개나 있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하루에 몇 번이고 저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칼날같이 시간을 도막내는 초침에 잠시 도취되었다가는,
한 발짝 한 발짝 다가드는 초침을 바라보며 몸을 떨고는,
가던 길을 더욱 서둘러 가는 것이다.
철컥, 분침이 움직인다.
지금은 구월 이십오일 열여덟시 사십일분 ...칠초.
소년은 마치 죄를 저지른 듯 고개를 황급히 숙이고 뛰듯 걸어간다.
집에 빨리 가야 하는데.
집에 왜 빨리 가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집에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빨리 걸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걷는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소비하는, 소모적인, 필요없는,
그리고, 짜증나는 행위일 뿐이다.
...
육교 위에서 소년은 도로 위에 놓인 검은 물체를 보고 있다.
소년이 보는 동안에도 자동차들은 그 물체를 계속 밟고 지나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주일 전인가, 배가 홀쭉하게 들어간 개가 저기에서 트럭에 치였었다.
텅.
개는 시허연 갈비뼈를 내보이며 잠시 꿈지럭 거리다가, 조용해졌다.
소년은 회색 차도의 흙먼지를 씻어내리는 검은 핏자국을 바라보며,
자신이 아무 감정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교과서에서는 이런 상황에 처하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년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았으리라.
이미 타이어 바퀴자국에 검게 변한 개의 주검은,
아무런 가책도 갖지 않는 운전자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풍화되어가고 있다.
핏자국은 이미 말라붙어 회색 아스팔트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있으면 저 걸래같은 덩어리가 없어질지.
소년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다시 조금 놀랐다.
이 빌어먹을 회색 도시는 마음까지 회색까지 바꾸어 놓고 있어, 생각한다.
철컥, 또 다시 분침이 움직인다.
저 시계탑은 왜 저렇게 톱니바퀴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도록 만들어졌을까.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소년의 발걸음은 뛰듯 바빠진다.
...
가족들은 이미 밥을 먹고 있다.
소년은 가방을 던져놓고는 수저를 든다.
딸그락 거리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 방 안에 걸린 시계소리만 울려퍼진다.
시계바늘은 다섯 개.
도시 운영회는 소년이 태어나기 십삼년하고 석 달 전 부터,
모든 방에는 바늘이 다섯 개인 시계를 달 것을 의무화했다.
물론, 그 째깍이는 톱니바퀴가 온 방안에 메아리 치는 구식 시계를.
도시의 총소득은 그 이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도대체 지금보다 못 살았다면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바빴을지.
소년은 밥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엄마, 바늘 두 개짜리 시계도 이렇게 소리가 컸어.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식기 딸그락 소리, 시계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입을 벌리다가 다시 다물어버린다.
회색 도시의 회색 사람들은, 회색 이야기를 듣기만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아주 가끔이나마 들을 수 있는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 몇 시 몇 분 몇 초인지 물어보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의 목소리이다.
딸깍.
소년은 수저를 놓고, 제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는다.
창틀 너머 모기망에 잘게 갈라진 회색 건물이 언뜻 보인다.
회색 자동차의 부르렁 거리는 소리, 경적 소리가 뽀오얀 먼지와 함께 스며든다.
소년은, 방 안에 놓인 전축을 있는대로 크게 튼다.
한 박자가 일초보다 영점일삼초 빠르다는, 기계음이 날카롭게 흘러나온다.
소년은 내일까지 포유동물의 해부도를 외워가야 한다.
하지만 차에 치인 개의 시체는 그 해부도와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노오란 맹장도, 새빨간 심장도, 갈색 콩팥도, 투명한 방광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오그라드는 새까만 피덩어리일 뿐.
잠시 노트 귀퉁이에다가 꿈에서 본 듯한 호수를 그려본다.
천문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동그란 달도 그려본다.
그리고는, 새까만 볼펜똥으로 얼룩진 그림을 째려보다가는,
여드름 가득한 뺨을 벅벅 긁다가 노트를 확 찢어버린다.
전축에서 울려퍼지는 기계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소년도 다시 해부도를 펼치고는 쫒기는 듯이 공부를 시작한다.
구월 이십오일 스물두시 십육분 오십일초.
미친듯이 종이를 휘갈겨대는 볼펜 소리는,
톱니바퀴 소리와, 기괴한 박자의 기계음과,
이제 막히기 시작한 도로에서 들려오는 경적소리와 섞여,
소년의 고막을 흔들어댄다.
소년은 해가 저물어들며 발간 기운이 스며든 회색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 건물 사이 그나마 남은 조각 하늘도 전깃줄에 찢겨져 있다.
해는, 이미 저 탑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도시 한 가운데에 솟아난 회색 시계탑을 바라본다.
구월 이십오일 열여덟시 사십분 이십....이십삼초.
기괴하게 도시를 내려다보는 시계탑에는 바늘이 다섯개나 있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하루에 몇 번이고 저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칼날같이 시간을 도막내는 초침에 잠시 도취되었다가는,
한 발짝 한 발짝 다가드는 초침을 바라보며 몸을 떨고는,
가던 길을 더욱 서둘러 가는 것이다.
철컥, 분침이 움직인다.
지금은 구월 이십오일 열여덟시 사십일분 ...칠초.
소년은 마치 죄를 저지른 듯 고개를 황급히 숙이고 뛰듯 걸어간다.
집에 빨리 가야 하는데.
집에 왜 빨리 가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집에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빨리 걸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걷는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소비하는, 소모적인, 필요없는,
그리고, 짜증나는 행위일 뿐이다.
...
육교 위에서 소년은 도로 위에 놓인 검은 물체를 보고 있다.
소년이 보는 동안에도 자동차들은 그 물체를 계속 밟고 지나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주일 전인가, 배가 홀쭉하게 들어간 개가 저기에서 트럭에 치였었다.
텅.
개는 시허연 갈비뼈를 내보이며 잠시 꿈지럭 거리다가, 조용해졌다.
소년은 회색 차도의 흙먼지를 씻어내리는 검은 핏자국을 바라보며,
자신이 아무 감정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교과서에서는 이런 상황에 처하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년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았으리라.
이미 타이어 바퀴자국에 검게 변한 개의 주검은,
아무런 가책도 갖지 않는 운전자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풍화되어가고 있다.
핏자국은 이미 말라붙어 회색 아스팔트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있으면 저 걸래같은 덩어리가 없어질지.
소년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다시 조금 놀랐다.
이 빌어먹을 회색 도시는 마음까지 회색까지 바꾸어 놓고 있어, 생각한다.
철컥, 또 다시 분침이 움직인다.
저 시계탑은 왜 저렇게 톱니바퀴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도록 만들어졌을까.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소년의 발걸음은 뛰듯 바빠진다.
...
가족들은 이미 밥을 먹고 있다.
소년은 가방을 던져놓고는 수저를 든다.
딸그락 거리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 방 안에 걸린 시계소리만 울려퍼진다.
시계바늘은 다섯 개.
도시 운영회는 소년이 태어나기 십삼년하고 석 달 전 부터,
모든 방에는 바늘이 다섯 개인 시계를 달 것을 의무화했다.
물론, 그 째깍이는 톱니바퀴가 온 방안에 메아리 치는 구식 시계를.
도시의 총소득은 그 이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도대체 지금보다 못 살았다면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바빴을지.
소년은 밥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엄마, 바늘 두 개짜리 시계도 이렇게 소리가 컸어.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식기 딸그락 소리, 시계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입을 벌리다가 다시 다물어버린다.
회색 도시의 회색 사람들은, 회색 이야기를 듣기만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아주 가끔이나마 들을 수 있는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 몇 시 몇 분 몇 초인지 물어보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의 목소리이다.
딸깍.
소년은 수저를 놓고, 제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는다.
창틀 너머 모기망에 잘게 갈라진 회색 건물이 언뜻 보인다.
회색 자동차의 부르렁 거리는 소리, 경적 소리가 뽀오얀 먼지와 함께 스며든다.
소년은, 방 안에 놓인 전축을 있는대로 크게 튼다.
한 박자가 일초보다 영점일삼초 빠르다는, 기계음이 날카롭게 흘러나온다.
소년은 내일까지 포유동물의 해부도를 외워가야 한다.
하지만 차에 치인 개의 시체는 그 해부도와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노오란 맹장도, 새빨간 심장도, 갈색 콩팥도, 투명한 방광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오그라드는 새까만 피덩어리일 뿐.
잠시 노트 귀퉁이에다가 꿈에서 본 듯한 호수를 그려본다.
천문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동그란 달도 그려본다.
그리고는, 새까만 볼펜똥으로 얼룩진 그림을 째려보다가는,
여드름 가득한 뺨을 벅벅 긁다가 노트를 확 찢어버린다.
전축에서 울려퍼지는 기계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소년도 다시 해부도를 펼치고는 쫒기는 듯이 공부를 시작한다.
구월 이십오일 스물두시 십육분 오십일초.
미친듯이 종이를 휘갈겨대는 볼펜 소리는,
톱니바퀴 소리와, 기괴한 박자의 기계음과,
이제 막히기 시작한 도로에서 들려오는 경적소리와 섞여,
소년의 고막을 흔들어댄다.
- Date
- 2003/07/04 22:48
- Category
- phantasmag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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