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누군가가 나에게 참으로 이상한 단어 선택이라 말했었지만,
그 이외에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질 않는다.

그래, 무섭다.
과거를 뒤돌아 보는 일은 참으로 무섭다.

그래서 끄적이다 보내지 않았던 편지를 꺼내어 보는 것이 무섭고, 사진을 펼쳐 보는 것이 무섭다. Picasa에서 잡아준 사진들 훑어 보다가 나의 과거의 사진들을 발견할 때면, 오싹한다. 과거, 기억하기 싫은 과거, 모조리 잊고 싶은 저채도의 어두운 과거들이 빛 바래지도 않은 채로 기억의 무덤에서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대학 원서들을 찾아 보고는 - 제발 사고로 인하여 지워졌기를 바랬지만 아쉽게도 컴퓨터 한켠에 고이 남아있었던 그 파일들 - 과거에 대한 자책감과 나의 무모함과 그러한 문서를 작성했다는 부끄러움에 원하는 정보를 찾기도 전에 문서를 닫아버리고 말았다. 그래, 추천인이셨던 두 선생님들께서도 나의 자신감만은 중간 점수 이상을 주긴 힘들어 하셨었지. 지금의 나는, 그 때의 자괴감 위에 우스꽝스러운 자만심만 위태로이 쌓아올려졌을 뿐이다. 대학원 원서의 추천인들께서는, 나의 자신감에 과연 어떠한 점수를 내릴지. 안타깝게도 그 평가는 볼 수 없겠지.

무섭기에, 과거가 그리도 두렵기에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기억의 파편을 부숴버리고 조각내어 버리고 내팽겨쳐 버리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의식의 저편에 있었기에 지울 수 없었던 단서들로부터 과거의 희무스레한 색깔이 스며나오기 시작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만 불러주던 애칭이 기억나거나, 이 거리가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걸었음이 분명한 거리라는 것을 깨닫거나 - 단순한 데자뷰가 아니라 그때의 체취가 분명히 남아있는 -, 혹은 옛 누군가의 냄새를 스쳐가는 거리에서 맡았거나, 혹은 누군가에게만 지었던 표정을 지어 버렸을 때, 아니면 흘러가는 음악이 누군가로부터 처음 들은 음악일 때, 등등등.

그러나, 그러나,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이미 지워진지 오래이다.

괴롭다. 가슴이 아리다. 미친듯이 기억의 바닷속으로 잠수하여 먼지가 되어버린 기억의 퇴적물을 마구 퍼올려 보지만, 당신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하고 뿌옇게 되고 말아버린 심해의 밑바닥에서 또 누군가의 것인지 모르는 유물들을 발견하고선 더더욱 아린 가슴으로 올라올 뿐이다. 그 아려움이 고통스럽고 두렵기에, 가까스로 발견한 그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잘근잘근 부숴버리고선, 다시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들판의 끝의 끝까지 달려가 화악 뿌려버리고는, 타들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흩날리는 그 먼지 구름에다 삿대질하며 미친듯이 웃어 제끼고는, 자책과 조소로 시려진 가슴을 가지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혹자는 고작 스물 한 살, 괴로움이라고는 체력장 오래달리기 정도밖에 안 될 코묻은 햇수를 살아온 놈이, 지울 수 있는 기억이라고 해 봤자 한 줌의 지푸라기 정도밖에 안 될 새파란 놈이 무에 그리 괴로운 척 글을 써내려가냐고 냉소할지도 모른다. 혹은, 다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반은 자조하고 반은 동정할 이도 있을 수 있겠지.

궁금하다. 나만이 그런 것인가. 나만이 또 다가올 내일 동안 스물 네시간 어치의 냄새나는 퇴적물을 쌓아올릴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들 그렇게 난도질한 자신의 과거에 통곡하며 다시 한 번 그 과거에 칼날을 박아넣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나보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은 그 아픔과 시려움을 어찌 견뎌왔으며, 어떻게 미래를 향해, 그것도 힘차고 자신감에 가득 찬 채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일까.

2006/08/15 22:36 2006/08/15 22:36
Date
2006/08/1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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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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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6/11/18 22:26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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